오늘의 경제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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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 교양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1973년 10월 OAPEC의 생산 감축과 엠바고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2.90달러에서 1974년 1월 11.65달러로 거의 네 배 뛰었고, 1974년 3월 엠바고가 해제돼도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한 이유를 짚었습니다. 오늘은 그 여파로 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실업이 한꺼번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경제학이 당연하게 여기던 틀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우리는 1973년 10월 OAPEC의 생산 감축과 엠바고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2.90달러에서 1974년 1월 11.65달러로 거의 네 배 뛰었고, 1974년 3월 엠바고가 해제돼도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한 이유를 짚었습니다. 오늘은 그 여파로 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실업이 한꺼번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경제학이 당연하게 여기던 틀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봅니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높은 인플레이션, 정체된 경제 성장, 높은 실업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1973년 석유 위기 이후 1970년대에 이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유가 급등은 에너지를 쓰는 모든 산업의 생산 비용을 올렸고, 그 비용이 소비자 물가로 전달됐습니다. 동시에 기업은 투자와 생산을 줄였고, 실업이 늘었습니다. 미국은 1973–1975년 침체에서 GDP가 3.2%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1975년 5월 9%까지 올랐습니다. 1964년 인플레이션 1%, 실업률 5%였던 미국은 10년 뒤 인플레이션이 12%를 넘고 실업률이 7%를 넘었으며, 1980년 여름에는 인플레이션이 약 14.5%, 실업률이 7.5%를 넘는 시대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많은 경제학자는 필립스 곡선—실업률이 낮으면 물가가 오르고, 실업이 늘면 물가가 잡힌다는 관계—을 전제로 했습니다. 즉, 둘 중 하나만 고르면 된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1973년 유가 충격은 공급 충격이었습니다. 원유 공급이 줄고 가격이 오르면, 물가는 밀어 올려지고 성장은 둔화됩니다.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역으로 움직인다고 보던 필립스 곡선의 안정적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연준(Federal Reserve)도 유가 상승이 경제 전반에 퍼지면서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과 성장 둔화가 동시에 작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중요 포인트: 공급 충격은 물가를 올리면서 성장을 누르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침체 완화와 물가 안정을 동시에 맞추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금리를 내리면 경기는 살릴 수 있지만 물가를 더 부추길 수 있고, 금리를 올리면 물가를 잡을 수 있지만 실업을 키울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여러 선진국이 겪은 것은 바로 이 교차로에 서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교훈은 오늘도 유효합니다. 에너지·원자재·공급망 같은 공급 쪽 충격이 오면, 수요만 조절하는 정책으로는 답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가와 실업을 동시에 보는 시각, 그리고 한 번의 충격이 왜 오래 남는지를 아는 일—그것이 1973년이 남긴 경제 교양입니다.
오늘의 한 문장: 엠바고가 풀려도 유가가 높게 남았을 때, 문제는 '유가' 하나가 아니라 물가·성장·실업을 동시에 흔드는 공급 충격이었다.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 중앙은행은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에 어떤 선택을 했고, 그 대응은 왜 오래 걸린 물가 안정으로 이어졌을까?
이 글은 경제·금융의 역사와 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교육용 콘텐츠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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